유럽연합의 ‘신아시아 전략’과 대북접근방식
유럽연합의 대북정책은 1994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채택한 ‘신아시아 전략(Towards a New Asia Strategy)’의 일환으로 파악해야한다. 한편, 신아시아 전략은 유럽연합이 아시아와의 경제협력과 군사적 차원에서 미국에 대응한 지역안보 구축을 위함이 주목적이었고 북한문제가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유럽연합의 대북정책은 대한반도 정책의 일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신아시아 전략은 아시아 시장으로의 진출확대와 경제협력 증진이 정치관계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생각을 기본으로 한다. 이 전략의 구체적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럽연합은 세계경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에서 유럽연합의 경제적 비중을 강화한다. 둘째, 아시아지역의 정치안정을 도모한다. 셋째, 아시아 빈국들의 경제발전을 돕는다. 넷째, 아시아에서의 민주주의와 법치의 발전, 그리고 인권존중의 원칙 수립 등이었다. 유럽연합은 이를 통해 유럽의 가치를 간접적으로 확인하고 공동체의 대외적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그 후 유럽연합은 아시아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2001년 ‘유럽과 아시아의 심화된 동반자 관계를 위한 전략적 틀(Europe and Asia: A Strategic Framework for Enhanced Partnership)’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보고서는 신아시아 전략의 일환으로 대한반도 전략을 포함하였다. 그 결과 2001년 EC-북한 전략보고서(The EC-DPRK, Country Strategy 2001-2004)가 탄생하였고 유럽연합의 대북한 정책이 처음으로 체계화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1. 대동아시아 정책수립 배경
1990년대 초반 채택된 유럽연합의 신아시아 전략에서 유럽연합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유럽연합의 경제적 비중 강화, 지역 안정, 빈국과 낙후된 지역들의 경제발전, 민주주의와 법치 및 인권신장 등의 목표를 위해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였다. 그 핵심은 아시아를 이전보다 훨씬 중시하고 경제협력관계를 한 차원 높게 강화할 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의 정치적 문제와 안보문제에까지도 관여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특히 아시아와의 정치대화 주제의 하나로 제시한 군비통제와 핵 비확산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의 핵 위협으로 국제사회에 야기된 도전은 아시아와 유럽이 협력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점을 밝힘으로써 유럽연합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였다.
유럽연합이 이와 같이 새로운 아시아 정책을 수립하게 된 배경에는 첫 번째,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에 따른 국제정치경제적 위상 강화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아시아는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두 번째, 유럽연합의 동아시아정책은 경제적 요인 이외에 유럽연합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유럽연합 측의 의도와 냉전 종식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 구축과정에서 아시아 지역의 유동성이 맞아떨어진 것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특히, 유럽통합이 심화됨에 따라 공동외교안보정책(CFSP: Common Foreign Security Policy)을 수립할 필요가 생겼고 통합된 유럽에 걸맞게 국제적 역할을 확대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동시에 국제적 외교역량을 발전시켜야만 했다. 이러한 유럽연합 내적인 역동성이 아시아에 대해 본격적인 전략을 추진하게 되는 내적인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냉전의 종식은 아시아 지역의 유동적인 정치 상황과 맞물리면서 유럽연합이 아시아 지역을 보다 중시하게 되었다.
요컨대 냉전의 종식과정에 발생한 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의 상대적 위상 하락은 유럽연합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였다. 마침 CFSP를 추진함으로써 자신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려는 유럽연합에게 이러한 기회는 놓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시아 지역에 대한 유럽의 관심과 역할증대 노력은 냉전 이후 세계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유럽의 세력권 확장 경쟁 양상으로 나타났다. 먼저 미국은 1993년 말 아태경제협력(APEC: Asia-Pacific Economy Cooperation) 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아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유럽연합은 아시아 지역에서도 APEC에 대응하면서 이 지역을 선점해야만 했다
그 결과 유럽연합의 신아시아 전략의 첫 번째 가시적 결과라 할 수 있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Asia-Europe Meeting)가 탄생하게 되었다. 유럽연합은 ASEM 참가를 통해서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아시아-유럽연합 삼각관계를 구축하여 미국과 균형을 유지하여 외교적 지위를 격상시켰다. 유럽연합은 신아시아 전략 목표를 달성하고 안보적 발언권도 증대시키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아시아 지역 국가들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정치적 군비통제와 핵 비확산, 인권문제와 민주주의 및 법치수립, 마약문제 등 정치대화를 통한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이미 군사, 안보적 측면에서 도전할 수 없는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어 유럽연합으로서는 연성권력을 확대시키는 것이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면서 유럽연합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현실적인 대안인 것이다.
사실 유럽연합의 입장에서 보스니아와 코소보 내전, 체첸 공화국의 유혈사태,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같은 문제보다 북한문제가 상대적으로 공동체 차원에서 동질성을 느끼며 보다 수월하게 정책을 수행할 수 있었다. 따라서 탈냉전 이후 전개되고 있는 유럽연합의 대북협력정책은 경제 및 정치통합과정의 심화와 확대과정에서 유럽연합의 내재적 가치를 실현하고 동질성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로 볼 수 있다.
이를 정리하면 유럽연합의 신아시아 전략은 첫째, 아시아 정치․경제 성장에 따른 새로운 관계정립. 둘째, 새로운 지역 안보에 대한 역할 설정. 셋째, 아시아 지역의 안정성, 민주주의 공고화와 법치, 인권 성장 고무 등 유럽연합의 가치의 간접적 확인. 넷째, 아시아 빈곤 지역에 대한 인도적 차원 정책지원을 통한 유럽연합의 외교적 이미지 제고가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2. 대한반도 정책 목표
신아시아 전략의 일환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 및 정치대화를 병행한 결과 유럽연합은 북한과 2001년 5월 14일 공식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이는 북한문제에 개입을 통해 탈냉전 후 국제관계에서 유럽연합의 정치 및 외교적 영향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전술하였듯이 유럽연합의 대북정책은 대한반도 정책의 일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대북 정책의 방향을 잡기 시작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 1999년 7월 일반이사회에서도 북한에 대한 지원정책 수립은 한국과 유럽연합의 관계 강화의 한 방편임을 강조하였다.
한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가 다시금 유럽연합의 특별한 관심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성장과 민주화로 인하여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커진 데 있었다. 유럽연합은 한국과의 정치대화를 강화함으로써 한국을 아시아에서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로 적극 지지하고 향상된 경제력에 걸맞게 경제협력을 강화하려고 하였다. 경제적 중요성과 함께 한국의 정치적 비중도 증가하였는데, 이것이 유럽연합 측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유럽과 아시아의 대화의 장으로서 ASEM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었다.
경제외적인 측면에서도 유럽연합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한반도를 특별히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지역의 안보와 평화 유지를 위해 적극 개입하려는 의사를 표명한 유럽연합으로서는 북한의 핵 문제가 불거져 있는 상황에서 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시아에서도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은 세계수준에서의 냉전해체와 한반도 수준에서의 냉전해체가 시간적 차이를 두고 진행되는 ‘냉전해체의 비동시성’으로 인해 여전히 긴장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었다.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러시아의 위상 약화와 중국의 개혁정책으로 생긴 동북아시아 국제정치 역학관계의 변동을 틈타서 유럽연합이 한반도 국제정치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연합의 KEDO 참여는 회원국과 유럽연합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고 볼 수 있다. 유럽연합은 신아시아 전략에 근거해 KEDO 참여가 핵확산을 방지하고 핵 비확산 레짐을 강화한다는 유럽연합의 외교정책 목적과도 일치하고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안보에도 기여한다는 이유로 KEDO 집행위원회 일원으로 참여했다. 또한 KEDO를 수립한 미국, 일본, 한국정부도 중립적 멤버를 필요로 하였고 유럽연합은 동북아시아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대하려고 하였다. 유럽연합이 KEDO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지불한 액수는 북한에 중유를 제공하기 위해서 미국이 지불하는 것과 비슷한 액수였다. 이는 유럽연합이 미국과 같은 규모의 재정지원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한반도에 확보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에까지 확대하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의 〈표 2〉는 1995년부터 2006년까지의 유럽연합의 KEDO 사업 지원 실적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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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
96 |
97 |
98 |
99 |
00 |
01 |
02 |
03 |
04 |
05 |
06 |
합 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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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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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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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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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예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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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
1.2 |
1.4 |
1.6 |
1.5 |
1.3 |
1.1 |
1.0 |
1.0 |
11.0 |
|
중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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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
28.4 |
16.7 |
14.3 |
12.9 |
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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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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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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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
28.4 |
17.6 |
15.5 |
14.3 |
17.7 |
19.5 |
1.3 |
1.1 |
1.0 |
1.0 |
123.7 |
|
한국 |
1.8 |
2.7 |
3.0 |
3.6 |
3.5 |
292.6 |
237.5 |
245.6 |
280.4 |
78.2 |
25.2 |
12.4 |
1,18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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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위원회 지원 총계 |
23.3 |
40.3 |
63.5 |
77.5 |
91.8 |
502.3 |
436.8 |
436.9 |
367.2 |
106.0 |
36.0 |
19.2 |
2,200.7 |
〈표 2〉유럽연합의 KEDO 사업 지원 실적
*자료: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KEDO 경수로사업 지원 백서』, 다해미디어, 2007. p. 129에서 재인용.
3. 북한의 대유럽연합 시각변화
2002년 북핵문제가 재발되자 유럽연합 내부에는 강경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세력과 지속적인 설득을 해야 한다는 세력으로 의견이 나뉘었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근본원칙인 핵 비확산과 인권보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북한의 행동은 지속적인 설득을 통한 해결을 주장하는 측의 요구를 무력화시켰다. 그 결과 2002년 11월 브뤼셀에서 열린 이사회의 결론에서 유럽연합은 북한의 언행이 한반도와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핵심적인 신뢰의 분위기를 심각하게 손상시킨다는 경고와 함께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즉각 중단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였다. 아울러 “국제공동체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기 위해서 NPT를 준수하고, 미사일 실험 유예를 지속하고, 대테러 국제협력에 적극 동참할 것을 주문하였다.
이 시기 유럽연합은 북핵위기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한편,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하여 상당한 압력을 가하였다. 유럽연합은 2003년, 2004년, 2005년 3차례에 걸쳐 유엔인권위원회에 북한인권결의안을 제출하였고, 2005년에는 UN총회에 결의안을 제출하였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북한은 2005년 11월 17일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된 직후 11월 26일부터 29일까지 예정되어 있던 유럽연합과의 정치대화를 취소하였다. 1998년 이후 매년 한차례씩 지속되어 오던 정치대화가 중단됨으로써 북한과 유럽연합과의 관계는 크게 후퇴하였다.
2003년 4월 16일 유럽연합 의장국인 그리스가 제안 설명을 한 대북 결의안에 불가리아, 체코, 에스토니아 등 옛 동유럽 국가들은 투표권은 없으나 대북결의안에 공개지지를 천명했다. 유럽연합에 의해 유엔 인권위원회 57년 사상 처음으로 북한 인권침해 규탄 결의안이 채택됨으로써 국제 사회에서 유럽연합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북한의 시각에 일정변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현대 유럽의 정체성은 냉전 기간을 통하여 서유럽에 국한된 소수 국가들의 역내 국가와 시민들의 종교적, 인종적 유사성과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공통의 역사적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간 축적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인권과 관련된 가치와 규범들은 현대유럽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조건을 제공하여왔다. 여기에 2005년 중동유럽 10개국의 가입은 유럽의 단일정체성 강화와 시민권 형성을 필요로 하였다.
그런데 중동유럽 국가의 유럽연합 가입은 유럽통합의 지속적 전망에 상당한 불확실성을 제기하였다. 이에 유럽인의 시민권의 형성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인권문제의 강조로 이어지게 되었다. 유럽연합 내에서의 인권문제 강조는 북한 인민의 인권문제로 확대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다시 북한의 대유럽연합에 대한 시각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출처: EU Expands Sanctions against North Korea – Maurits Gorlee Trade Compliance 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