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브렉시트(Brexit)의 혼란과 EU의 미래(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 Ph.D Lee JongSue 2021. 4. 14. 08:44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이행하기 위한 법안이 찬성 330, 반대 231표로 영국 하원을 통과했다. 이로써 영국은 20166월 국민투표 이후 37개월 만에 EU를 떠나는 것이 확정되었다. 법안은 상원 표결과 여왕 재가를 거쳐 정식 법률이 된다. 유럽의회가 영국의 탈퇴협정을 승인하면 영국은 131EU를 떠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영국이 EU를 완전하고 순조롭게 떠나기 위해서는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다. , 통상, 안보, 외교정책 등 미래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협상을 벌여야 한다. 문제는 20193월로 예정됐던 브렉시트가 세 차례 연기되면서 협상을 끝내야 할 전환기간이 11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품, 자본, 사람의 이동의 자유가 포함된 무역협상 문제 등을 들어 전환기간 연장을 검토해야 한다는 EU와 연장은 있을 수 없다는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이 이끄는 보수당 내각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만일 미래관계 합의에 실패한다면 사실상 노딜 브렉시트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영국 경제는 브렉시트 결정 이후 파운드화 가치가 약 20% 하락 하는 등 단기적 충격이 있었으나 우려와는 달리 현재 비교적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브렉시트의 거시경제적 효과를 보면 단기적으로 영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무엇보다 영국경제의 9% 정도를 차지하는 금융업 부문에서의 일자리 감소는 영국 경제에 어느 정도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중동국가, 영연방 국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에서는 아직도 영국 금융의 위치가 확고하다. 따라서 타 국가가 이를 대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장기적으로 보면 브렉시트는 영국의 제조업 수준을 한 단계 높일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영국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내외이다. 유럽의 최강국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은 20%를 상회한다.

 

영국은 아직도 세계 3위 제약업체인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 8위인 아스트라제네카(AstraZwneca), 레일건(RailGun)을 개발한 세계2위 방산업체인 BAE System, 세계 2위 에너지 기업인 로열 더치 쉘, 광산업계 세계 1위 기업인 BHP 빌리톤, 3위인 리오틴토 등 경쟁력 있는 제조업체들 건재하다.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한 이후 일본 소프트뱅크사 손정의 사장의 ARM 인수에서 보듯이 영국의 IT, 정보산업에는 세계 최고인 기업들이 상당수 있다. 특히, 영국 ARM사의 프로세서는 삼성과 애플사를 비롯한 전 세계 모바일 폰 85% 이상에 탑재되어 있다. 여기에 영국이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EU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임을 가정할 때 브렉시트는 영국경제에 장기적으로는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다.

 

한편, 유로존(Eurozone) 경기는 2014년 이후 점진적인 회복 추세를 나타냈었다. 2016년 경제성장률은 1.7%를 기록하면서 미국의 성장률을 상회하였고, 물가상승률은 20171월말 기준 1.8%를 기록했다. 그러나 브렉시트,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따른 대외적 여건이 악화되고 독일을 중심으로 경기둔화세가 두드러지면서 2019년과 2020년 유로존 및 주요 회원국 경제성장률이 각각 1.1%1.2%로 하향 조정되었다. 특히, 대외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독일, 이탈리아 전망치는 하향폭이 크게 나타났다. 독일은 2019년 전망치를 1.6%에서 0.7%, 이탈리아는 0.9%에서 마이너스 0.2%를 전망했다. 독일 경제는 과거 구조개혁과 재정지출 확대, 유럽중앙은행(ECB)의 저금리 정책, 유로화 약세 등에 힘입어 지난 10년간 성장을 거듭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독일경제는 매분기 0.5% 성장했으며 지난 40분기 가운데 35개 분기에 성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 독일경제는 무역분쟁과 지정학적 불확실성, 자동차 산업의 고전 등으로 흔들리고 있다. 무역분쟁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보다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증가로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독일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다. 유로존에서 차지하는 독일의 비중이 28% 정도임을 감안할 때 독일경제의 부진은 유로존 전반의 경기하강 확대로 이어질 우려를 높인다.

 

최근 독일은 경제성장률 둔화에 대비해서 지역, 도시 단위의 아동보육, 교통 및 디지털 인프라 관련 투자와 함께, 교육, 연구 및 혁신 등에 관련된 추가기금 편성을 통해 장기 성장을 도모할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독일의 경제 침체가 단순히 2018년 이후 중국 경제의 하락에 의한 자동차 등의 수출 감소에 따른 일시적이며 순환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지속적이며 구조적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첫째, 독일 경제는 자동차·화학·기계 등 전통적인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전통적 산업들이 2010년 초반부터 인더스트리 4.0’을 통해서 추진해온 디지털 경제에 대응 노력이 글로벌 기업을 포함하여 중소 하청기업에 이르기까지 충분히 확산되지 못했다. 둘째, 2018년 이후 단위노동비용이 상승하고 경쟁력이 저하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당시 슈뢰더(Gerhard Schroder) 사민당 정권이 실행한 노동시장 개혁의 효과가 사라지고 있다. 셋째, 국내소비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 가운데, 저출산, 고령화로 인하여 생산성 향상은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넷째, 미중 무역분쟁 등으로 글로벌 가치 사슬이 끊겨 세계경제가 지역화해가는 현재의 글로벌 환경은 수출 주도 성장을 지속해 온 독일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EU 회원국 중에서는 독일이 한국의 최대 서비스무역 파트너이며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그 뒤를 잇고 있다.

 

EU는 정치, 경제, 문화의 유럽화(Europeanization)’를 통해 하나의 유럽을 추구하여 왔다. 정책영역 또한 기존에 국가에서 담당하던 복지, 이민 등과 같은 주제의 정책들을 EU 차원으로 상당부분 이전하였다. 그러나 최근 EU는 통합의 속도를 조절하고 국가별 정책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안인 긴밀한 연합에서 느슨한 연합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경제적 측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영국이 금융 중심의 경제에서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의 변환을 목표로 EU를 떠나는 것이 확정되었다. 브렉시트를 시작으로 이탈리아도 이탈렉시트(Italexit)로 유럽통합을 위협하고 있다. 또한 EU는 영국의 탈퇴로 인한 재정기여금 감소와 스페인, 이탈리아 은행들이 갚아야 하는 상당한 규모의 채권 만기 등으로 인해 재정긴축을 해야만 한다. ECB의 전망에 따르면 유로존 2020년 성장률은 마이너스 1%이다. 이는 역내투자 감소로 이어져서 유로존 경기 회복의 속도가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EU는 영국이 탈퇴한 후 최대 150억 유로의 예산 부족과 관련해 절반가량은 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절반 정도는 새로운 수입을 통해 대체하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EU의 새로운 수입원으로는 여행세, 플라스틱세, 탄소세가 검토 중이다. EU 내에서 그동안 영국은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 번째로 혜택보다 분담금이 많은 순기여국이었다. 영국의 EU 탈퇴로 연간 120~150억 유로(153500억원~192천억원) 정도의 수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나머지 27개 회원국들이 메워야 한다. 최근 EU에서는 2021년부터 2027년까지의 예산지출규모를 놓고 프랑스, 독일과 같은 순기여국과 폴란드와 헝가리 등 순수혜국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지금까지 상대적으로 큰 수혜를 받았던 동유럽에 대한 예산 지원이 줄어들고 남부 유럽에 대한 지원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브렉시트 이후 경비절감과 방위프로젝트 자금 확보를 위해 극빈층 예산 절반을 삭감할 가능성이 있다. 예산지원의 공정성이 대두되고 재정관리법이 도입될 예정이므로 지방정부 및 도시들은 자립의 문제와 이민 망명자 수용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지방정부 차원의 질 좋은 공공서비스의 제공은 그들 스스로 재원을 마련하고 조직화하는 자유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사회적, 지역적으로 분열된 유럽을 통합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공동체, 회원국, 도시 및 지방정부 차원의 다층적 파트너십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 동시에 현재 유럽의 130개 이상의 도시와 40개 이상의 파트너 도시가 참여해 EU와의 관계에서 도시를 대표하는 정치적 플랫폼으로 성장한 유로시티(Eurocities)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예상 가능한 변화는 다음과 같이 예상해 볼 수 있다. 브렉시트 이후 통합의 미래에 관한 회의주의와 함께 극우의 영향력 확대라는 부정적 현상 또한 정치담론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실업, 안보, 문화 결속을 위협하는 하나의 요소로서 이민문제에 초점을 맞춘 극우정당은 선거에서 평균 10%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는 국가주권과 이민문제를 결합시킴으로써 사회문화적 공포와 불안감을 해소하겠다는 포퓰리즘 전략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를 포함한 많은 유럽 국가들의 이민자 수는 과거 50년 전에 비해 약 3배 정도 증가했다. 유럽화가 유럽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평화번영을 추구하는 유럽인에 의한 또 하나의 세계화가 아닌, 계층간 불균형을 초래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다름 아닌 것으로 귀결되자 극우세력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분담금과 관련해서 상대적으로 고부담을 지는 국가가 저부담을 지는 경제 취약국가와 취약계층에게 희생과 인내를 제한 없이 강제한다면 유럽화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다름없는 경제 이데올로기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EU는 이를 막고 회원국 시민들간의 결속력 강화를 위해서는 복지제도, 노동시장제도 등 선택적 사회정책은 확대하고 동시에 초국가적 기구의 권한이 약화된 느슨한 연합을 함으로써 유럽회의주의를 감소시키는 노력을 확대할 것이다.

 

2019년 우리나라의 수출규모가 대외여건 악화로 10년만에 두 자릿수 비율로 하락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세계무역액 순위 9위의 국가이다. 우리는 지금의 세계적 경제 위기를 좋은 위기로 삼아야 한다. 진단에 따라 그 처방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에 브렉시트 이후 EU의 정책변화를 면밀히 분석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유로존 사태이후 보조금의 축소는 집행위원회를 배제한 도시간 협력 및 결속강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유럽도시간 연합의 목표는 유로존 사태 이후 하락한 도시들의 경쟁력 회복과 도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있다. 유로시티(Eurocities) 사회적 패키지를 위한 태스크 포스팀을 운영하여 도시간 통합을 유도하고 있다. 그 결과 첫째, 유로시티와 같은 도시간 통합 프로젝트에 가입한 도시들은 보건, 복지, 교육, 훈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통합된 정보를 얻는다. 둘째, 가입 도시 및 기업들은 공공조달 분야에서의 통합된 정보를 활용하여 질 좋은 상품을 도시민들에게 공급한다. 셋째, 국가-지역간 협력모델 구축의 시간적 제약과 하향적(top-down)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지역간 경쟁력 강화 또는 지역발전과 혁신을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이 가능해 질 수 있다.

 

출처: Future of Europe: EU Council vetoes treaty change (euobser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