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바이든의 통상정책 vs EU 통상정책 한국에의 시사점

EU정책연구소 원장 Ph.D Lee JongSue 2021. 5. 24. 14:11

바이든의 통상정책은 보호무역을 표방했던 트럼프 행정부에의 그것과는 차별된다. 이러한 바이든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적극적 자유무역-소극적 보호무역의 스펙트럼에서는 적극적 자유무역 노선으로 정의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자유주의 이론에 기초한 경제 영역에서 트럼프 행정부에서의 고립주의를 벗어나 적극적인 자유무역 질서를 회복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 국외 시장에서 적극적으로 기회를 찾고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그가 무조건적 자유무역질서 확대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상원의원으로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중국의 WTO 가입에 찬성하였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와 환경보호에 취약할 것으로 여겨지는 미-페루 무역협정에는 반대표를 던졌다바이든은 정치·군사동맹뿐만 아니라 환경, 이민, 망명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대응도 다자주의적 접근을 통해서 해결해 나갈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에서 재가입하고 EU와의 협력을 통해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해 나갈 것을 약속했다. 또한 COVID-19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허약한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도 EU와 마찬가지로 리쇼어링을 통해 복원할 계획에 있다.

 

바이든 시대 통상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에 중점을 두어 대응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동맹국으로서 미국과의 관계에서 신중한 통상정책이 요구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정치와 통상을 분리해서 개별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설 가능성이 크다. 어떤 결정이든 한국을 둘러싼 통상 환경에 큰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에 이해득실을 잘 따져야만 할 것이다. 이미 RCEP 가입 서명을 한 상황에서 미국이 TPP 재가입을 추진할 경우 우리도 가입 여부에 대해서 진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바이든 시대 통상환경에 영향을 미칠 또 다른 중요한 요소는 환경과 노동문제이다. 환경정책과 노동정책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COVID-19, 대책과 함께 최우선으로 추진할 사안이다. 바이든은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석유 자원 의존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에너지, 자원, 고통 등과 관련하여 환경문제를 강조하면서 대대적인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바이든 행정부의 지원세력인 노동계의 영향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 진출 기업은 현지 고용인력의 처우 등 노동 관련 문제에 대한 점검과 개선이 필요하며 대미 수출품 생산과정에서도 노동문제가 쟁점이 될 수의 있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의 생산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 개발도상국들의 노동환경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공급사슬 국내화와 관련해서는 바이든 행정부가 공급사슬 국내화를 추진하는 궁극적인 목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공급사슬 국내화를 강조하는 것이 반드시 미국 내 사업장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공급사슬 국내화의 목적은 신뢰할 수 있는 공급사슬 구축이 목적이므로 대미 투자의 확대도 고려하는 한편 미국과의 신뢰관계 강화를 통해서 새로이 구축될 공급사슬에의 참여기회를 타진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 현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무역 성장이 위축되며 글로벌 공급망의 확대 추세가 약화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미중 무역갈등의 심화와 함께 기존의 글로벌 공급망은 지역공급망으로의 재편이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공급망의 성장과 세계무역의 확대는 사실 북미, 유럽, 아시아 등 주요 경제권역별 지역공급망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는데 COVID-19 위기 이후 미국, 독일 등 주요국의 주도로 적극적인 리쇼어링 정책 추진을 통해 역내 무역과 내수 활성화에 주력하며 지역 공급망뿐 아니라 국내공급망(Domestic Value Chain)이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20207월 발효된 USMCA를 통해 미주 지역의 지역 공급망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쌍순환경제(dual circulation economy)’를 도입하여 내수확장, 대외개방과 규범 개선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미-중 갈등 속에서 국내정치에서 위축된 입지를 보였던 시진핑의 대외 신임도를 제고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다만 기후변화, COVID-19에 대한 대응, WTO 개혁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해서 불가피하게 협력할 필요성도 있어 2021년 미-중 관계는 근본적인 경쟁구도 하에서 제한된 분야에서의 협력을 모색하는 기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EU는 다자주의를 확대하는 가운데 회원국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신통상전략을 발표했다. 이번 신통상전략은 다자주의의 약화, ·중 헤게모니를 둘러싼 갈등, ·EU간 무역갈등, 디지털 및 친환경 전환, COVID-19 확산 등 대내외 환경변화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마련되었다.

 

EU 집행위원회는 COVID-19로 인한 봉쇄조치가 단계적으로 철폐되더라도, 유럽 내 소비지출이 펜더믹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COVID-19 봉쇄 기간 축적된 초과 저축은 소비 성향이 낮은 고소득층에 집중됐지만, 빈곤층은 초과 저축이 없었기 때문에 소비가 크게 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COVID-19를 계기로 이루어진 디지털화, 자동화 등이 경제 생산성을 이전보다 높일 전망이나, 생산성 향상이 주로 대기업에 집중되어 중소기업 투자 부진과 기업 간 격차를 유발할 소지가 크다. 아울러 생산성 향상 중 대부분이 자동화로 인한 인력감축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고용부진에 따른 수요부족도 우려된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다자주의와 확대와 EU 회원국의 이익 보장이라는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을 새로운 통상전략의 핵심으로 채택하였다. 전략적 자율성은 위기상황에서도 타국에 의지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다만 전략적 자율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보호무역적인 조치들이 시행될 가능성이 큰 만큼 EU는 전략적 자율성 앞에 개방형이라는 단어를 추가해 EU가 기본적으로 다자체제 중심의 개방적인 통상정책을 추구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에는 복원력 및 경쟁력, 지속가능성 및 공정성, 단호한 규범 기반의 협력 등 세 가지 개념이 포함되었다EU는 개방형 전략적 자율성 통상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6개 분야의 구체적 주요 조치를 발표하였다.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WTO 개혁, 녹색 전환, 디지털 전환, EU 규제의 영향력 강화, 무역 대상국 확대 및 교류 강화, 공정경쟁을 위한 무역협정 집행 강화 등이다.

 

한편, EU는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기보다는 기존 WTO 체제를 미국과 함께 복원하고 이미 체결한 FTA 운영과 관리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대신 미국과 함께 WTO 체제의 기능복원에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EUWTO의 기능회복을 위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다자주의를 회복한다는 구상이 이번 새로운 통상전략의 핵심요소 중 하나이다. EU는 이미 한국, 일본, 캐나다. 남미공동시장, 베트남을 포함한 신흥시장 국가 등 다양한 무역 상대국과 FTA를 체결하였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EU도 비전통적 통상 이슈인 노동, 환경을 통상정책에 포함하는 경향이 더욱 커질 것을 예상할 수 있다. EU는 무역 상대국과 체결하는 다자 및 양자 간 모든 협정에 TSD 챕터를 포함해서 환경, 노동, 인권, 젠더 등에서 조항 이행을 더욱 강력하게 요구할 것이다. 이에 한국은 TSD 챕터의 환경 및 노동, 탄소국경세 조정, 디지털 분야 규제강화, WTO 관련 논의 등 EU의 새로운 통상정책에 대한 분석과 함께 대비책을 마련해야만 할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와의 교역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EU에게 있어 아프리카는 향후 15년 동안 노동 인구가 엄청나게 증가하여 성장을 위한 최고의 글로벌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세계 인구의 17%가 아프리카에 살고 있고, 20세 미만 세계 인구의 26%가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아프리카의 노동 인구는 45천만 명 정도이고 2035년까지 7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프리카의 소비력이 높아짐에 따라 EU의 서비스 및 제조업 수출 기회도 늘어날 것이다.

 

미국과의 무역분쟁, Covid-19 사태, 브렉시트 등을 겪으며 EU 내에서는 역내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에 세이프가드, 반덤핑, 상계관세 등 무역구제 조치가 증가하고 있고, 역외 기업에 대한 보조금 심사도 엄격해지고 있다. 또한 EU5억명의 단일시장을 기반으로 개인정보보호규정(GDPR), 디지털세, 탄소국경조정제도와 같은 역내 규범을 글로벌 규범으로 확산시키려는 룰세터(rule setter)의 역할을 강화해 나가고 있기 때문에 EU 통상정책 방향은 매우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만약 탄소국경제도의 내용을 두고 미국과 EU가 서로 다른 정책수단을 고려할 경우, 한국의 부담이 가중될 우려가 있으므로 정부는 EU와 미국의 탄소세 규범화 논의를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디지털세와 관련해서 EU일반재판소는 515일 아마존에 25000만 유로(3412억원)의 체납 세금 납부를 명령한 EU집행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했다. 이번 판결은 EU 내에서 촉발된 거대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디지털세 도입 논쟁에 또 한번의 타격을 준 것이다. EU집행위원회는 27개 회원국 내에서 룩셈부르크, 헝가리,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들이 법인세율을 낮춰 다국적 기업 유치경쟁을 벌이는 것을 막고자 디지털세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EU는 사법재판소에 항소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애초 IT 기업에만 부과하려던 디지털세가 가전, 자동차, 스마트폰 등 제조업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마케팅 활동을 하는 기업·소비자 간 거래 기업이라면 제조업도 디지털세 부과 대상에 포함된다는 해석 때문이다. 우리 기업이 과세 대상에 포함되더라도 세금이 실제 부과되는 것은 EU 사법재판소의 판결 이후이고 조약 체결과 EU국회 비준, 법인세법 개정 등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편, 프랑스 비롯한 몇몇 EU회원국은 EU사법재판소의 판결과 상관없이 국가차원에서 독자적인 디지털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2019년 프랑스는 이미 독자적인 디지털세를 발효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매출액 75천만 유로, 국내 매출액 2500만 유로를 초과한 기업에 3%의 디지털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는 프랑스의 디지털세가 미국 기업을 차별하고 있으며, 국제관행에도 위배된다고 판단한 미국무역대표부 보고서를 바탕으로 프랑스산 핸드백과 화장품 등에 25%의 관세에 해당하는 약 13억 유로 규모의 보복관세 부과를 결정한 바 있다.

 

집행위원회와 회원국 특히, 프랑스간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개별 회원국과 미국간의 통상환경이 급격히 경색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EU 간 항공기 보조금 분쟁, 철강 및 알루미늄 관세, ·EU 간 무역협정 협상은 직간접적으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따라서 정부는 미국과 EU 간 협의 진행상황 및 결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디지털세와 관련해서는 EU와 회원국가 차원의 디지털세 부과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과 정부의 선제적 공조가 필요하다.

 

출처: The digital tax conundrum (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