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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극우의 재등장과 노르웨이 테러의 연관성

EU정책연구소 원장 Ph.D Lee JongSue 2021. 2. 26. 15:47

노르웨이 연쇄 테러사건의 범인 안드레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테러행위 2시간 40분 전에 그가 작성한 ‘2083: 유럽독립선언문의 전반적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오는 2083년까지 유럽 각국이 극우 보수 정권으로 정권교체를 이뤄 무슬림 이민자를 내쫓아야 하고, 중동 이슬람 국가들을 제압할 수 있는 새로운 유럽을 탄생시켜 기독교 문화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 경제위기에 대한 공동대처에 합의한 후 현재 유럽 정치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최대의 화두는 낙관적인유럽통합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통합의 미래에 관한 낙관주의와 함께 극우(Far Right)의 재등장과 영향력 확대라는 부정적 현상 또한 정치적 담론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일견 유럽통합과 극우의 재등장이라는 두 개의 경향은 모순적이다. 유럽통합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개방된 열린사회를 지향한다면, 극우의 재등장은 민족주의라는 울타리를 친 닫힌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유럽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유럽화(Europeanization)’를 통해 하나의 유럽을 추구하고 있다. 최근 발효된 리스본조약(Lisbon Treaty)은 이러한 목표에 한걸음 다가가는 중요한 단계로 평가된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극우세력은 민족정체성과 배타성을 강조하면서 유럽화에 저항하고 있다.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 또한 다르다. 유럽연합은 극우를 유럽의 파괴자로 규정한다면, 극우는 유럽연합이 민족의 혼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유럽의 통합과 극우의 재등장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또한 다르다. 한편에서는 유럽통합의 진행으로 공존과 평화의 가능성이 훨씬 증대되고 있다고 파악한다. 다른 측에서는 극우세력의 재등장과 영향력 확대가 배타적인 삶과 유럽의 이질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세기 전 유럽인들은 파시즘과 같은 극단주의가 가져온 증오와 파괴의 역사를 종식시키고자 유럽의 통합을 시도했다. 통합 과정 속에서 극우세력은 친유럽주의자가 되기도 했지만 유럽정치의 주변으로 후퇴하거나 사라졌다. 하지만 1990년대를 기점으로 오스트리아 하이더(Jorg Haider)의 자유당(Freedom Party), 프랑스 르펜(Le Pen)의 국민전선(Front National), 네덜란드의 포튠(Pim Fortuyn) 지지자들, 이탈리아 보시(U. Bossi)의 북부동맹(Lega Nord)과 같은 극우정당은 유럽 정치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동유럽 신규 가입국인 헝가리, 루마니아 등에서도 극우세력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극우의 등장 배경과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든 간에 이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목표는 유럽통합에 대한 반대 혹은 저항이라는 사실이다.

 

20096월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유럽연합 27개국 가운데 10개국(오스트리아, 덴마크, 핀란드, 그리스, 헝가리, 이탈리아, 네덜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영국)에서 극우정당이 약진했다. 이 중 반유럽통합을 기치로 내건 네덜란드의 자유를 위한 정당(PVV)’16.9%의 득표율로 배정된 25석 중 4석을 차지하며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올렸다. 오스트리아 자유당(EP)’13.4% 득표율로 2004년 선거보다 1석 많은 2석을 차지했다. 자유당의 자매정당인 오스트리아 미래를 위한 동맹(BZOe)’이 얻은 득표율(4.6%)를 고려하면 오스트리아 극우정당이 기록한 득표율은 18%에 달한다. 헝가리의 극단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극우정당인 더 나은 헝가리를 위해(Jobbik)’15%의 표를 얻으며 3석을 확보했다. 영국에서는 영국 독립당(UKIP)’이 의석수를 늘리고 민족주의 정당인 영국국민당(BNP)이 처음 유럽의회 의원을 배출했다. 또한 이탈리아 북부동맹(NL)’덴마크 인민당(DPP)’도 각각 8석과 2석을 확보하며 기존 의석수를 두 배로 늘렸다. 이렇듯 유럽 극우세력은 주류 정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할지 모르지만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점점 그 세력을 확장 하고 있다. 특히 동유럽 신규 가입국의 경우에는 보다 더 급진적인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유럽통합의 진행 그리고 평화와 공존의 시대에 극우의 재등장과 성장을 예상하기란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극우의 재등장과 영향력 확대는 현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극우의 재등장 요인은 무엇인가?” “왜 유럽통합에 저항하는가?”

 

유럽통합과 관련해 극우정당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유럽통합의 미래에 있다. 유럽 극우의 재등장과 성장은 1990년대 이후 유럽통합의 확대와 심화과정 속에서 진행되었다. , 극우는 유럽통합이 추구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열린사회를 두려워하고 여기서 소외된 사람들의 지지에 의해 탄생했다. 유럽 극우의 재등장과 영향력 확대는 유럽통합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나타나는 괴리 때문이다. 따라서 유럽연합이 더욱 긴밀한 연합을 추구하면 할수록 극우정당들의 활동 공간은 더욱 넓어질 수 있다. 유럽연합이 확대와 심화를 추구하면 할수록 극우는 더욱 더 성장할 기회를 얻을 것이고 더 많은 저항을 할 것이다. 크라이스키(Kreisky)가 지적하듯이 더욱 큰 문제는 극우정당들에게 의제를 선점당한 기존의 정당들이 스스로 우경화되거나 그들과 동맹을 맺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최근 유럽의 금융위기와 그리스의 경제위기에서 보여준 부유한 회원국들의 냉담한 반응은 유럽연합이 추구하던 유럽적 연대의식의 부재를 보여주었고 이는 극우가 요구하던 바로 그 내용이었다. 결국 극우가 요구하는 배타성은 회원국 간 단절을 가져와 유럽연합 자체의 미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극우세력의 민족주의적 경향은 유럽의 요새화(Fortress of Europe)’를 강화해 유럽통합의 이념을 근본적으로 해칠 수 있을 것이다.

 

통합과 연대에 대한 극우정당들의 입장과 태도 연구는 유럽연합 자체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후기 산업사회로의 이행, 외국인 이민자의 증가, 주변국과의 교류 증가, 역사와 영토 등 민족주의적 이슈의 증가로 극우세력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의 주변국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동북아 지역은 마치 국가들의 요새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지역에서도 지역협력에 대한 담론이 무르익고 있다. 그들은 유럽통합이 유행시킨 지역주의(regionalism)()’으로, 그것에 반대하는 세력을 ()’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동북아 지역협력 담론에서는 유럽의 사례가 상생과 공동의 발전을 이룩할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 극우세력의 재등장 사례는 유럽에서 시도된 지역주의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향후 동아시아 지역협력에서는 이에 저항하는 극우세력의 성장을 사전에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 역시 최근 급격한 정치, 경제적 발전으로 유럽에서 극우정당이 성장한 배경과 유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정치, 경제적 발전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 이민자의 급격한 증가,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 등 극우 세력의 성장에 유리한 조건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불거진 역사왜곡과 일본 국회의원의 울릉도 방문 시도 등은 한국의 극우세력에 더욱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유럽의 사례는 한국의 미래를 살펴보는데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라 판단한다.

출처: 대학강의 듣는 노르웨이 최악의 테러범 브레이비크 - 경향신문 (kh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