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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시대, 넘지 못할 선은 없다

EU정책연구소 원장 Ph.D Lee JongSue 2021. 2. 28. 09:06

현대 사회에서 보수주의란 자본이 중심이 된 시장경제와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정치세력을 의미한다. 진보주의란 노동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의 결함에 주목해 사회 민주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대안적 체제를 지향하는 세력을 뜻한다. 세계화를 인정하고 수용하면서 속도를 달리해 앞날을 설계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보수주의자 또는 진보주의자라고 한다. 고전적 의미의 진보 좌파는 사라졌으며 존재한다 해도 의미 없는 집단이 되어 버렸다. 좌파의 근거지는 다 무너졌고 우리는 더 이상 북한을 경쟁상대가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생각할 뿐이다. 다만 좌파의 철학하는 방식은 우리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갈망해온 자유민주주의를 이미 실현했다는 측면에서도 현 정치권의 대립구도는 보수 대 진보가 아니라 보수 대 수구의 구도가 맞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은 상대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유동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다.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규정하는 스펙트럼은 엄청난 편차를 보인다. 기존의 질서를 지키려는 세력을 다 보수주의자로 규정할 수 있고 자유주의자들을 보수주의자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전통이 부정되면서 공동체가 해체되고 정체성 위기가 발생하는 상태에서는,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가 말한 것처럼, 전통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진보 세력으로 간주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낙태나 이혼을 정당하게 생각하는 페미니스트들과 성의 개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보수 세력으로, 낙태와 성의 개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나 가정과 전통을 지키려는 세력들이 오히려 진보 세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 유럽은 극우 포퓰리즘 정당을 제외하고는 이미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도 진정 어느 당이 보수주의 정당인지 구별이 안된다. 그만큼 교집합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아가게 된 시발점을 찾자면 1997년 대선에서 3당 합당이 이루어지고 나서부터가 아닐까 싶다.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김대중이 보수주의 세력의 핵심 상징이었던 김종필, 박태준과의 연합에 성공함으로써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간의 경계가 무너졌다. 김대중은 박정희식의 엘리트가 중심이 된 개발 자체를 부정했고 일생동안 대중 경제론 철학은 유지했다. 하지만 1970년대 말부터 북한 경제에 대한 한국 경제의 우위가 판명되고, 1980년대에 들어서 본격화된 세계화 현상,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 등을 보면서 다양한 부문에서 생각이 바뀐 것은 분명하다. 국방 부문만 봐도 박정희가 오히려 자주국방론을 내세웠다. 김대중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냉정한 현실을 인식하고 미국 등 세계 4강 질서의 테두리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그의 안보론은 국제질서를 철저히 따랐다는 점에서 더욱 보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20 총선의 혼란스러움도 이런 복잡한 이데올로기적 변형과 착종에 그 원인이 있다. 이제 진보-보수의 개념은 주로 현실 타개성이냐 현실 손질성이냐의 구분 정도이지 차이가 크지 않다. 더불어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모두 자유주의적 성향의 전형적인 보수정당이다. 자본주의적 사회 체제를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다는 면에서 그는 두 당 모두 우익정당이고 자본주의적 경제 체제를 고스란히 인정하면서 체제 내에서 정치적 손질을 가하겠다는 입장에 서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보수정당이다. 단지 두 당이 갈수록 공유하는 부분이 커지는 분배적 정의의 속도면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두 당 모두 미국, 유럽, 일본 중심의 세계 경제관과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경쟁 자본주의로 일원화되다시피 한 세계 경제 체제에서 이 틀을 뛰어넘은 시도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2020 총선은 더불어 민주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는 중산층 몰락이 낳은 결과이면서 미래통합당이 수구정당으로서의 고착화된 이미지 변신에 실패한 결과이다. 중산층이 몰락한 보수의 시대에서는 승리 이데올로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보수 내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도 포용하는 사상 및 이념 체계를 과감하고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날개로 나는 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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