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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테러사태, 유럽통합에 미칠 영향과 전망(서울신문)

EU정책연구소 원장 Ph.D Lee JongSue 2021. 2. 27. 10:11

그리스 긴축재정 부담 완화에 합의한 후 최근까지 유럽의 정치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최대의 화두는 어렵지만 그래도 낙관적인 유럽통합의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시리아 난민 사태를 둘러싼 회원국간 이해관계의 난립에도 공동합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유럽의 낙관적 미래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물론 시리아 전체 난민수에 비하면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다. 유럽연합은 독일이 주도한 온정주의 정책으로 난민 할당제 통과라는 합의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이번 이슬람국가(IS)가 주도한 프랑스의 심장 파리 테러는 난민할당제 실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은 물론 유럽통합의 미래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파리 테러로 시작된 IS의 목표는 첫 번째 난민수용정책에 반대하는 극우세력 결집을 통한 유럽연합의 분열이다. 유럽통합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개방된 열린사회를 지향한다면, 극우의 등장은 민족주의라는 울타리를 친 닫힌사회를 지향한다. 유럽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유럽화(Europeanization)’를 통해 하나의 유럽을 추구하고 있다. 반면, 유럽의 극우세력은 민족정체성과 배타성을 강조하면서 유럽화에 저항하고 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판이하다. 유럽연합이 극우세력을 유럽의 파괴자로 규정한다면, 극우세력은 유럽연합이 민족의 혼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IS의 두 번째 목표는 유럽에서의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 확산을 빌미로 한 전세계적 이슬람 세력의 결집이다. 이번 파리 테러의 일부 용의자들이 시리아 난민 틈에 섞여서 프랑스에 들어온 것이 밝혀지면서 난민입국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폴란드 정부는 이미 더 이상 난민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이다. 헝가리 역시 기독교에 기반을 둔 유럽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무슬림 이민자를 수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난민 수용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독일 내에서도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온정주의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의 이러한 이슬람 혐오현상의 증가는 IS가 목표한 것과 일치하고 있다. IS는 프랑스 파리를 공격함으로써 유럽인들의 무슬림에 대한 반감을 키우고 이를 계기로 분열되어 있는 이슬람 세력의 결집을 노리고 있다.

 

파리 테러로 인해 내년으로 다가온 미국의 대선도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강경 보수 성향의 후보가 당선될 가망성이 높아졌다. 미국과 프랑스가 연합한 IS 척결을 위한 연합군이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감행한다면 종파를 초월한 중동에서의 무슬림 국가들간의 결집이 이루어 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이번 파리테러가 지난 반세기 통합과정에서 보여주었던 화해와 협력을 방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독일주도의 유럽통합에는 변화가 예상된다.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던 프랑스의 입김이 한층 강화될 것이며 유럽안보방위정책이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유럽안보의 주도권을 북대서양조약기구 휘하에 두려는 미국과 공동외교안보정책을 근간으로 유럽의 독자방위체제를 구축하려는 유럽연합 회원국들간의 이견이 좁혀질 것이다. 유럽안보방위정책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코소보 사태에서 보듯이 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 간 의견의 불일치가 없었더라면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유럽연합이 회원국간 공동안보방위정책에 동의하고 의견일치를 본 것은 유럽안보방위정책을 통해 유럽방위산업 재편성 및 구조조정이 절실하였기 때문이고 외부적 요인이 강하게 작용한 탓이었다. 이번 파리 테러사태로 유럽의 안보는 유럽의 힘으로라는 모토가 다시 내걸릴 것이고 그동안 미국 군사력의 지나친 의존에 대한 비판이 확대 될 것이다. 그 결과 현재 6만인 신속대응군 수가 늘어나는 전력증강이 이루어 질 것이다. 이처럼 이번 사태는 유럽연합의 공동외교안보정책 전반에 걸친 개혁의 계기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또한 파리 테러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유럽인들은 새로운 유럽질서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는 유럽안보에 대한 대외적 정체성과 미국과의 관계 재설정 논의로 이어질 것이다.

 

출처: After the Paris Attacks, Locals Are Bound by Community and Defiance - Bloom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