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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민간투자, 체제보장이 아닌 체제전환이 필요하다

EU정책연구소 원장 Ph.D Lee JongSue 2021. 2. 27. 10:57

고착상태였던 북미대화가 결정되었다. 북미회담 재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시 체제를 보장하며 한국 수준의 번영을 약속하겠다고 했다. 미국의 공적지원은 북한의 체제보장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북 경제 지원 주체로 한··일을 지목했다. 미국인의 세금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공적지원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북미대화가 성공하여 북한의 비핵화가 진행된다하더라고 미국 기업들의 대규모 대북투자는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1인 독재 체제인 북한에 대한 기업들의 투자확신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미국 기업들에게 투자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내적이든 외적이든 북한체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

 

1989년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이후 중동유럽 국가들은 제 각각 정치제도를 선택했다. 28년이 지난 지금 약간씩 다르긴 해도 중동유럽 국가들이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어가고 있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즉 각국의 정치제도 선택의 기준은 자국에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현 가능하게 해줄 최적의 모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동유럽 국가들에서의 정권 교체과정에서 체제전환의 피로감, 민주주의 피로감, 유럽연합 가입에 따른 피로감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서유럽 국가들과 비교해서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정당체제와 같은 민주주의적 제도가 공고화되어가고 있다. 체제전환의 낙오자들이 자본주의 하의 경쟁논리보다는 평등이란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중동유럽 국가들이 과거 공산주의 체제로 돌아갈 일은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 정부가 붕괴되면서 중동유럽 국가들은 일시에 유럽연합 가입을 신청하였다. 당시 시장통합과 경제통화동맹을 준비하던 유럽연합은 기존 서유럽 회원국들과 현격한 정치경제적 차이를 갖는 국가들의 가입신청에 대비하여 코펜하겐 기준(Copenhagen Criteria)이라는 엄격한 가입충족조건을 제시하였다. 코펜하겐 기준이란 가입 희망 국가라면 다음의 3가지 차원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정치적 기준으로 민주주의와 법치, 그리고 인권 및 소부 민족 보호를 위한 제도적 안정을 꾀해야 한다. 둘째, 경제적 기준으로 안정적으로 기능하는 시장경제체제와 시장경제체제에서 경쟁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어야 한다. 셋째, 유럽연합의 법, 제도 및 공동정책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치적 목표와 경제통합 및 통화동맹과 관련한 다양한 제도적 조건을 포함한다.

 

유럽연합은 이처럼 엄격한 가입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유럽연합 차원의 PHARE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양한 가입 전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이후 유럽연합은 이들 지원 프로그램을 터키와 발칸국가들로 확대해서 2007년부터 사전가입지원프로그램(IPA: Instrument for Pre-Accession Assistance)으로 통합하였다. 사전가입지원프로그램은 코펜하겐 기준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전략적인 방안이다. 따라서 사전가입프로그램은 민주적 헌정질서, 법치, 인권 및 비차별, 정치경제 개혁, 사회적 결속과 시민사회 확대 등 코펜하겐 기준을 충족할 여러 정책과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되었다. 현재는 마케도니아, 코소보, 몬테니그로, 세르비아 등 발칸 지역 7개국과 터키가 포함된다. 중동유럽국가들에게 민간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처럼 유럽연합은 중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이 가입하기 이전부터 민주주의로의 체제전환을 위한 상당한 지원 및 투자를 했다. 최근에 들어서야 비로소 중동유럽 국가들의 민주주의 공고화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중동유럽국가들은 민주주의로의 체제전환 중에 있다. 체제전환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유럽의 사례에 비추어보아 북한에 민간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지려면 체제보장이 아닌 체제전환이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