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논문 및 미발표 논문

EU 대북정책의 변화과정

EU정책연구소 원장 Ph.D Lee JongSue 2021. 4. 16. 14:06

수십 년 동안 북한은 양자간, 다자간 형태의 협상노력과 국제사회의 당근과 채찍전략에 맞서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목표에 있어서는 확고부동한 자세를 견지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6북한으로부터 더 이상 핵위험은 없다라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핵확산 위기는 해결된 상태가 아니다(Trump 2018). 북한의 핵개발 역량은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바대로 상당히 향상되었다. 현재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 교착상태는 한반도 평화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한 북한은 2020113일로 예정된 미국 대선을 앞두고 핵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 중단 약속을 파기할 가능성도 있다(Carlin 2020).

EU 외교안보정책고위대표(High Representative for Foreign Affairs and Security)였던 모게리니(Federica Mogherinni)한반도에서 일어난 일들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라고 언급한바 있다(EU Delegation 2019). EU와 회원국들은 북핵으로 인해 그들의 이익이 침해받는 상황과 관련해서 북한의 행동을 정기적으로 확인한다. 즉 북핵 상황과 한반도 안정 및 아시아 시장 상황을 정기적으로 확인한다. 이처럼 EU는 북한의 핵확산을 막고 궁극적으로 북한의 핵 및 탄도미사일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달성하기 위해 한반도 문제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해야만 한다.

북한 문제에 대한 EU차원의 관여는 19931차 북핵위기와 북한의 대홍수로 인한 경제 위기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비판적 포용이라는 EU의 대북정책은 그 이후 일관된 EU 전략으로 제시되기도 하지만 구체적으로는 3시기로 구분이 가능하다. 1) 1995~2002년 적극적 포용, 2) 2002~2013 비판적 포용, 3) 2013년 이후 적극적 압박이다(Ko Sangtu 2017). 어느 시기이던지 간에 당근과 채찍의 조합을 사용하는 전략 혹은 유인과 압박을 사용하는 전략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은 꾸준히 진행되었지만 상대적으로 북한의 인권상황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EU와 회원국들이 활용할 수 수단은 외교 영향력과 함께 상당히 줄어들었다. 최근 EU에서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의 대북정책은 일관성이 없는 제한된 해결책으로 인해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즉 독립적인 유럽의 입장과 대북 접근 방식이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Hilpert and Meier 2018, 7384).

북한이 핵 및 미사일 프로그램을 개발함에 따라 유럽에서의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실패한 국가와 도적의 이미지 사이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 결과 EU의 대북정책은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EU는 북한이 핵보유 국가가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보상전략으로부터 징벌전략으로 전환했다. 전자는 안전보장, 경제협력 및 정치적으로 인정하는 전략이고, 후자는 경제적 제재와 정치적 고립전략이다. EU의 이러한 대북전략의 변경은 초기에는 회원국들이 주도했다는 것에 주목해야한다. 이는 향후 EU의 새로운 대북정책이 특정 회원국들에 의해 촉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Ko Sangtu 2008). 이탈리아와 스웨덴을 포함한 다수 EU회원국들은 EU보다 먼저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핀란드와 네덜란드는 EUKEDO에 참여를 결정하기 전 재정적 기여를 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아일랜드는 북한의 인권상황과 관련해서 EU에 대북압박을 높이도록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또한 프랑스와 영국은 EU의 대북정책을 적극적 포용정책(Active Engagement Policy)에서 비판적 포용정책(Critical Engagement Policy)으로 변경하는데 핵심 역할을 하였다. EU 기관들이 적극적 역할을 한 사례는 북한에 인도주의적 원조를 제공하고 회원국들도 이를 따를 것을 요청한 것이 유일하다.

 

적극적 포용정책

 

1994EU는 아시아 지역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제안한 첫 번째 아시아전략을 발표했다(European Commission 1994). EU는 아시아전략 발표와 함께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 개입을 통한 안정화가 유럽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측면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개발을 막고 김대중 정부의 남북한 화해협력을 돕기 위해 그 당시 시행한 EU의 한반도 관여정책들을 지지했다. 북한은 유럽의 입장이 미국에 영향력을 미쳐 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촉진할 수 있기에 EU의 역할을 환영했다(Pardo 2017, 1-15).

1995년과 2002년 사이 EU는 북한과의 관계를 상당히 강화했고 북한의 다양한 지역에서 EU의 개입을 점차적으로 확대했다(Berkofsky 2003). 첫 번째는 1995년 평양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 지원은 2004년까지 연장되며 지원의 내용은 주로 식량으로 구성되었고 약 4억달러에 달했다. EU의 이와 같은 인도주의적 지원은 정치적 또는 안보관련 조건을 내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으로부터 특별히 환영을 받았다.

 

그림 1EU의 대북 인도적 지원

출처: Mario Esteban, “The EU’s role in stabilising the Korean Peninsula,” Elcanno Working Paper, 2019, p. 11.

 

EU는 제1차 북핵위기 이후인 1997년 적극적으로 북한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했으며 1997KEDO4번째 집행이사국으로 합류했다. 1998EU와 북한은 처음으로 고위급 정상회담을 개최했으며 안보, 인권, 경제원조에 중점을 둔 양자의제에 동의했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결합하여 EU의 회원국들과 북한간의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고위급 정치대화가 시작되었다. 그 결과 EU와 북한은 20015월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되었다.

정치적 화해의 결과 EU-북한간 경제교류도 증가하였다. EU는 북한 제품을 EU에 수출할 수 있도록 시장을 개방하였고 기술적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북한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EU가 북한의 3번째 교역파트너가 될 때까지 무역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EU의 기술지원 영역이 포함된 ‘EC-북한 국가전략보고서 2001-2004(EC-DPRK: Country Strategy Paper 2001-2004)’국가지표프로그램 2002-2004(the EU’s National Indicative Programme 2002-2004)‘의 야심찬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European Commission 2001). EU는 북한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남북 화해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그러나 북한과의 양자관계가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북한이 핵확산금지, 인권, 국가경제체제 개혁과 같은 분야에서 진일보하고자 하는 정권의 의지에 달려 있었다(European Commission 2001). 2002년 북한은 핵무기를 만드는데 사용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북한은 2003110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EUKEDO에 대한 원조를 중단했고 북한과의 기술협력과 기술협력이 보장하는 북한의 상업상의 이익도 사라지게 되었다.

EU의 초기 대북정책인 적극적 포용정책은 외교, 인도주의, 경제, 다자간 등 4가지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EU와 몇몇 회원국들은 1990년대 말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긴밀히 협력하여 외교적으로 관여하는 정책을 펼쳤다(Moon Chung In 2012). 199812EU 집행위원회는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를 요청하고 고위공무원 수준에서 북한과 첫 번째 정치회담을 개최했다. 이후 20015월 스웨덴의 EU의장국 기간 동안 페르손(Göran Persson) 스웨덴 총리가 이끄는 EU 고위급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했다. 그 결과 EU와 북한간의 외교관계가 성립되었고 2001년 최초로 대북전략보고서가 작성되었다(EU External Action Service 2001). 한편, 북한과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우호적 관계가 유지되어 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은(프랑스 제외) 20001월이 되어서야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둘째, EU1990년대 후반의 세계적 경제위기에도 북한에게 일관된 원조를 제공하였다(Park Myungkyu, Seliger, Park SungJo 2010). 셋째, EU와 북한간의 무역은 주로 북한이 EU로 수출하는 형태였고 이는 1990년대 북한경제의 총체적 붕괴를 막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Berkofsky 2003). 1990년대 말 EU와 북한의 교역량은 3억 달러에 달했고 EU는 북한의 세 번째로 큰 무역파트너였다. 넷째, 19979EU는 북핵 프로그램 동결의 대가로 북한에 에너지를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인 KEDO에 가입했다. 이러한 적극적 관여정책은 2000년대 초의 제2차 북핵위기가 발발하자 그 효용성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2차 북핵위기는 2002103일 제임스 켈리(James Kelly)를 대표로 한 미국 협상단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이 비밀리에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탄두를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발생했다.

 

그림 2북한의 대EU의 수입량

출처: Mario Esteban, “The EU’s role in stabilising the Korean Peninsula,” Elcanno Working Paper, 2019, p. 13에서 재구성.

 

그림 3북한의 대EU 수출량

출처: Mario Esteban, “The EU’s role in stabilising the Korean Peninsula,” Elcanno Working Paper, 2019, p. 14에서 재구성.

 

2. 비판적 포용정책

 

200210월 발생한 제2차 북핵위기의 결과 EU의 대북 적극적 포용정책은 비판적 포용정책으로 변경되었다. 이는 EU가 북한과의 관계는 유지하면서 핵비확산과 인권분야에서의 향상이 있을 경우에만 보상을 하는 조건을 부여하는 정책이었다. 2003년에서 2013년까지 EU의 대북정책이 적극적 포용정책에서 비판적 포용정책으로 바뀐 기간 동안 북한 경제와 비핵화 과정에서 EU가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은 상당히 감소하였다. 대신에 EU는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응하여 형성되고 있던 국제적 압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2003KEDO 분담금 중단을 비롯한 기술지원을 중단했고 인도적 지원도 식량안보와 NGO 중심의 간접지원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과거 EU는 제1차 핵위기 관리를 위해 설립된 기구인 KEDO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제2차 핵위기가 발생한 이후, 20038월 중국, 일본, 한국, 러시아, 미국의 참여로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시작된 6자회담에서는 제외되었다. 그러나 아직은 EU의 역할이 외교적 지원만 하는 것으로 제한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몇몇 회원국들은 20035월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미국 대통령에 의해 시작된 대량살상무기와 핵 기술이 북한에 들어가거나 나오는 것을 차단하려는 시도인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the 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에 더해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유럽의 두 국가인 프랑스와 영국은 이 기간 동안 유엔안보리가 북한에 대해 취한 모든 결의안을 지지했다. 또한 유럽평의회는 안보리결의안 1781(2006)에 더해 북한에 자체적 제재를 부과했다(European Council 2018a).

동시에 프랑스와 아일랜드를 비롯한 EU 일부 회원국들은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해 국제적 동참을 호소하였다. 북한 인권을 둘러싼 EU 개별 회원국들과 북한간의 양자회의의 결과에 실망한 EU는 재빨리 이 역할을 떠맡았다. EU는 북한문제 있어서 인권이 차지하는 비중을 높였으며 북한 인권상황은 전례 없는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Ko Sangtu 2006, 337-358). 2003EU는 유엔인권위원회 보다 먼저 북한정권이 북한을 떠나려는 인민들의 처벌을 중단하고 지금까지 북한의 범죄행위인 외국인 납치사건을 해결하고 고문 및 인종차별에 관한 국제협약을 비준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다. UN대북인권결의안의 승인은 유엔인권위가 북한의 인권침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처음 있는 일이었다. EU2004년 유엔인권위에 재차 결의안을 제출하면서 북한 정권이 만약 인권상황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그에 따른 제재를 할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2005EU는 유엔인권위가 북한의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비난하기도 전에 새로운 결의안을 제출했을 뿐만 아니라 유엔총회로 그 제안을 확대시켰다. 2006년에도 유엔총회와 새로 설립된 유엔인권위에서 그 과정이 반복되었다.

그 결과 EU와 북한의 정치적 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북한의 무역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 EU는 북한이 200610월 첫 번째 핵실험을 실시한 이후에도 인도주의적 원조는 지속하였다. 한편, 북한의 식량사정이 개선되면서 더 이상 응급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양의 유럽공동체 인도주의 사무소(the European Community Humanitarian Office)는 문을 닫았다. 대신 북한이 요구한 것은 북한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가져오는데 도움이 되는 기술 및 기술적인 지원이었다. 그러나 EU는 북한이 핵프로그램 개발을 지속하는 한 그들이 요구한 기술지원을 이어갈 의사가 없었다.

북한이 핵프로그램 개발을 계속하고 유엔안보리로부터 제재조치가 나오면서 긍정적 유인책과 강제조치 사이에서의 균형은 점차 후자 쪽으로 기울어졌다. 제재 조치들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북한 정권을 만류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자 EU2013218일 분명히 한 바와 같이 안보리제제조치에 더해 독자적으로 강력한 금융과 무역제재, 자산 동결, 그리고 여행제한 등 광범위한 추가 제재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EU의 대북 비판적 포용정책에는 두 가지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첫째는 CVID 북한의 비핵화였고, 둘째는 북한의 인권상황개선이었다. 그러나 비판적 포용정책으로 북한의 인권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EU 내부에서 대북정책의 효용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 결과 최근 EU의 대북정책은 미국과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면서 북한에 대한 최대 압박을 하는 적극적 압박정책(Active Pressure Policy)’으로 변화하였다.

 

3. 적극적 압박정책

 

EU는 대북정책 관한 그들의 공식적 입장은 여전히 비판적 포용으로 묘사한다(European External Action Service 2018a). 그럼에도 불구하고 EU의 비판적 포용정책에서 강제적인 조치가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양자간 무역량 또한 현저하게 감소하였다. 이는 비판적 포용정책이 적극적 압박정책으로 변화한 증거라 할 수 있다. EU는 유로존 위기, 브렉시트,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통합정책의 전반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202068일 베트남 국회는 재적의원 475명 전원의 찬성으로 EVFTA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2EU 의회에서 비준된 EVFTAEU 정상회의 승인 등을 거쳐 이르면 7, 늦어도 올 하반기 중에는 정식 발효될 것이 확실하다. 그 결과 기존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의 변경과 더불어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경제교역 규모가 확대될 것이다. 이에 따라 EU의 동아시아 전략을 비롯한 대북정책도 또한번의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EU는 이미 무기금수조치를 포함한 안보리 결의안 1718(2006)과 함께 독자적 대북 제재를 결의했다(European Council 2018b). 그러나 EU가 본격적으로 강력한 대북제제를 채택하기 시작한 것은 안보리 결의안 2087(2013) 부터였다. 북한의 핵프로그램 개발과 관련된 개인 및 단체, 이중용도 제품 및 기술, 무역, 금융 서비스, 투자 및 운송과 관련해서 자체적 대북제제를 크게 강화하기 시작했다(European External Action Service 2018b). 이 외에도 북한이 위반한 사항과 관련해서 이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가능성을 고려하도록 요구한 안보리결의 69/188(2014. 12)를 통해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한 국제적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UN General Assembly 2014). EU는 유엔총회가 매년 승인한 북한인권상황에 대한 결의안을 공동 후원함으로써 2005년 이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끌었듯이 북한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EU의 독자적 대북 제재조치는 EU-북한 관계의 중단과 함께 진행되었다. 한편, EU-북한 관계의 냉각은 한국과 미국에게 손짓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EU1998년 이래로 매년 열렸던 북한과의 회담을 20156월 이후 중단하였다(European External Action Service 2015). 더욱이 EU 회원국들은 2017년 내내 북한 대사관의 규모를 줄일 것을 요구했다. 북한 주재 회원국 대사관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극단적 사례는 20179월 스페인 마드리드 소재 북한대사의 추방이었다. 이후 EU는 북한대사관에 외교관 1명만 주재하는 것을 허용했다. 또한 포르투갈은 20177월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완전히 단절했다.

스웨덴과 같은 일부 EU 회원국들은 북한과의 대화를 복원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지만 한반도 안보문제에 대한 EU의 외교적 영향력은 크게 줄었다(Ballbach 2019, 1-5). 미국, 중국과 달리 EU는 북한에 충분한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 핵심 행위자가 아니다. 외교관계를 수립할 수 있는 수단들은 더 이상 사용이 가능하지 않으며, 미국이 다자간 협상 참여약속을 철회할 때 EU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히 2015714일 비엔나에서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과 독일이 이란과 맺은 포괄적 행동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을 미국이 201858일 탈퇴를 공식 선언한 것에 비추어 보아 EU의 역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EU의 역할에 북한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첫째, 북한은 EU와 대부분의 회원국들을 중립적 행위자로 인식하지 않는다(Ballbach 2019, 5-8). 북한 관리들은 EU를 미국의 적대정책을 추종하는 행위자로 생각한다. EU는 그 자신이 편견을 갖고 있고 미국과 협력하기 때문에 공평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둘째로 북한 관리들은 프랑스, 영국, 독일이 북한에 대립적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면서 북유럽과 동유럽의 EU 회원국들에게는 회유 신호를 보내고 있다. 셋째, 북한은 EU와의 협력이 가져올 잠재적 이익에 대해 과대평가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Panda 2019). 제재 해제 시 북한에 대한 EU의 투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Pardo 2019). 국제적 제재가 이루어지기 전에도 EU의 대북투자는 북한의 투자 환경이 불안정했기 때문에 투자가 극도로 제한적이었다(Esteban 2019). 2000년대 후반부터 2016년까지 한국이 북한의 주요 무역파트너였다면 현재 북한의 거의 모든 무역은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Bondaz 2019).

문화협력 부문에서도 평양에 있는 괴테연구소가 문을 닫음으로써 EU의 존재감이 크게 줄었다. 북한내 유럽 NGO들이 철수하면서 인도주의적 존재 또한 현저하게 감소했다. EU의 현재 북한 관련 정책토론은 북미 정상회담(1: 2018612, 2: 2019227~28, 3: 2019630)과 남북 정상회담에 EU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이다. 즉 북한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북미, 남북한간의 외교과정에 EU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구체적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EU가 평양과 조건부 화해를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한 정상회담 이후 고착상태에 있는 비핵화 과정으로 인해 EU-북한간 조건부 화해가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은 아직 이른 것 같다. 북한 정권이 비핵화에 대해 효과적이고 독립적으로 검증된 조치들을 취하지 않는 한 EU 차원의 기존 결정을 되돌리기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EU가 동아시아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회복하고 독자적 대북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다층적 포용정책을 통한 다각적 대북접근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