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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의 대외 위상도 하락, 균형과 안배의 역효과

EU정책연구소 원장 Ph.D Lee JongSue 2021. 2. 27. 09:59

백안관은 버락 오바바 미국 대통령이 5월말 스페인에서 열리는 유럽연합-미국 정상회의에 불참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헤르만 판롬파위 상임의장이 대외적으로 유럽연합을 대표하는 인물인데 순회의장국 총리가 주재하는 회의를 정상회의로 간주할 수 없다는 미국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발생의 원인은 애초 상임의장직을 신설하면서 회원국이 6개월씩 돌아가면서 의장을 맡는 순회의장제가 폐지되지 않은 것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2010년 상반기 의장국인 스페인은 리스본조약 발효 후에도 27개국을 대표하는 순회의장국으로서의 지위를 활용하길 원하고 있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이른바 PIGS 국가부도 위기가 다른 유로존 국가들로 옮겨 갈 수 있다는 우려는 해당 사태를 진정시킬 마땅한 정치력이 없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이와 같이 리스본조약을 통해 대외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유럽연합의 의도는 리더십에서부터 혼선을 빚고 있으며, 이는 결국 유럽연합의 국제문제 해결 능력의 한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유럽이사회에서는 회원국들이 6개월마다 돌아가며 순회의장직을 맡았는데 이 때문에 업무의 연속성 부족과 국제적인 대표성 부족의 우려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설립한 것이 상임의장직이다. 상임의장은 임기 26개월이며 한차례 연임이 가능하며 이사회에 참석하는 회원국 수반들이 가중다수결에 의해 선출한다. 상임의장은 유럽이사회를 주재하고 대외적으로 유럽연합을 대표하며 이사회내의 원만한 의사소통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내는 역할을 한다.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특별히 부여되는 권한은 없다. 기존 순회의장처럼 유럽연합 정상회의를 소집하는 게 주된 역할이며, 인사권이나 의회 해산권 같은 실질적인 힘은 없다. 지금까지는 집행위원장이 유럽연합을 대표해 왔는데 선출된 상임의장과의 역할 분담으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바로수 현 집행위원장은 상임의장이 유럽연합의 대통령은 아니며 단지 정상회의의 의장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프랑스 등 일부 국가는 상임의장이 미국, 중국의 최고지도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대외관계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앞으로도 역할 구분의 불명확성으로 인한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리스본조약 발효에 앞서 지난 20091119일 유럽연합을 대표하는 유럽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에 헤르만 반 롬푸이 벨기에 총리가 선출되었고 외교와 안보정책을 대변하는 외교대표에는 캐서린 애슈턴 현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선출되었다. 이들의 선출 과정을 살펴보면 이미 구조적으로 문제 발생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프랑스와 독일의 반대로 사실상 낙마한 뒤 상임의장은 강대국이 아닌 소국에서 우파 성향의 관리자형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헤르만 반 롬푸이 벨기에 총리와 얀 페터르 발케넨더 네덜란드 총리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다. 블레어 카드를 잃게 된 영국은 외교대표를 요구했고 나머지 회원국의 묵시적 합의 아래 데이비드 밀리밴드 외교장관을 밀었으나 밀리밴드 본인이 이를 고사하면서 상임의장을 우파에 내준 좌파에서 마시모 달레마 전 이탈리아 총리를 대안으로 거론하였다. 그러나 마시모 달레마는 옛 공산당 활동 전력에 영어를 못한다는 결점에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 넬리 크뢰스 유럽연합 경쟁담당 집행위원 등 여성 지도자들이 성별안배를 촉구하면서 캐서린 애슈턴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외교대표 후보로 급부상했다. 결국 특별 정상회의 개회 직전 좌파가 애슈턴을 공식 추천하면서 논란이 멈추었다. 반 롬푸이-애슈턴 조합은 정치 성향으로는 중도우파인 기독민주당과 좌파인 노동당, 출신국으로는 소국인 벨기에와 강대국인 영국이라는 균형과 함께 성별 안배도 달성한, "유럽다운" 타협의 결과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거물급 인사가 상임의장을 맡는데 부담을 느낀 일부 지도자들 때문에 균형과 타협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국제무대에서 지명도가 낮은 반 롬푸이와 애슈턴이 유럽연합을 대표하는 얼굴이 되었다. 이처럼 상임의장과 외교대표는 태생적으로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으므로 확고한 정치적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