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논문 및 미발표 논문

브렉시트에 관한 이론적 논의

EU정책연구소 원장 Ph.D Lee JongSue 2021. 4. 11. 15:59

특히 유럽통합은 지난 20년 동안 발전하였음에도 회원국들의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성장, 유로존 위기, 이민과 난민 문제, EU 리더십 문제, EU 내에서의 모순과 차별 증가, 브렉시트, 유럽 정체성에 대한 질문, 유럽에 대한 회의주의 상승, 유럽 시민 간의 EU 합법성 약화, 글로벌 경제에서 EU의 위치 등 갑작스러운 도전에 직면했다. 그로세(Grosse)EU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초국가주의 개념의 후퇴를 가져왔고 정부간주의의 적실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프랑스나 이탈리아와 같은 다른 국가의 역할이 약화되면서 EU 전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독일의 권한과 영향력이 높아지는 것을 보면 설득력이 있다. 무엇보다 EU가 범 유럽 공통의 가치와 초국가 정체성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되어야한다는 생각이 흔들리고 있다.

 

1. ()기능주의

 

유럽통합에 관한 연구는 주로 신기능주의론과 모랍칙(Andrew Moravcsik)의 자유주의적 정부간주의론(Liberal Theory of Intergovernmentalism)을 중심으로 발전하여왔다. 신기능주의적 접근법은 두 가지 핵심요소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초국가적인 이익집단, 전문가 단체, 생산자 집단, 노동조합, 문화 및 과학자 조직 등의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영향력이고, 둘째는 초국가적 제도의 역할이다. 이익을 결집하고 이를 정책으로 전환시키는 초국가적인 제도적 장치가 없다면 아무리 이익이 크더라도 통합으로 결실을 맺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신기능주의의 요체는 성공적인 통합을 위한 조건으로서 제시한 배경조건, 과정조건, 그리고 관할업무의 확장을 가져올 조건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전형적인 통합이론인 신기능주의 이론은 사회세력들의 이익, 이념, 담론 등에 초점을 맞추어 국가 간의 통합과 분열의 역학을 설명한다.

비정치 분야에서의 부문별 협력이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고, 특히 경제 분야 등 기술적 차원에서 비정치 협력이 상위 단계인 정치적 협력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이 기능주의이다. 기능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재난, 빈곤, 기아 및 질병 퇴치와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정치적 협력이 선결조건으로 이루어지면, 국제 경제 분야나 기타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협력이 가능해 진다고 본다. 기능주의 이론을 체계화시킨 미트라니(David Mitrany)는 다뉴브 강 수상 교통 통제를 관리하기 위한 다뉴브 위원회(Danube Commission)의 성공에 착안한 바 있다.

기능주의 이론을 발전시킨 신기능주의자인 슈미터(Schmitter)가 분류한 여섯 가지 형태의 국가 간 통합양상은 브렉시트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여섯 가지 형태는 확산(spillover), 형성(buildup), 파급(spill-around), 배회(muddle-about), 통합범위의 축소(retrench), 역행(spill-back)이다. 이 중에 확산, 형성, 파급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역통합에 긍정적이다. 그에 비해 배회와 통합범위의 축소는 통합과 통합의 후퇴사이의 어느 지점이라 정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모호하다. 신기능주의에서 확산의 분명한 반대개념은 역행 개념이다. 이는 회원국이 유럽의 규제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정책 공유의 범위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역행의 경우는 권위의 이양수준과 협력이슈 영역 모두가 축소되기 때문에 분열임이 명확하다.

역행은 반드시 회원국의 탈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역행은 협력 수준의 저하 또는 협력 범위의 축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회원국 지위 포기와 탈퇴는 권한의 이양 정도와 이슈 영역에서 협력의 급격한 축소가 발생하는 경우이다. 이슈 영역에서의 협력의 급격한 축소는 정치, 경제, 안보, 통상, 환경, 노동 등 영역에서 협력의 정도와 범위를 줄이는 것이다. 이처럼 신기능주의는 통합이 통합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가역성(reversibility)을 예측했다.

한편, 슈미터와 레프코프레디(Schmitter and Lefkofridi)EU가 연합의 경제와 사회 전체를 위한 핵심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한 EU는 붕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기능적 협력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역행의 충동을 억제하고 역행의 충동으로부터 야기되는 통합의 근원적 위기를 피할 수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경제적 차이로 이어진 기회의 불평등과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해야만 한다. 신기능주의는 통합과정을 충성심의 이전과정으로 본다. 사회적 다원주의, 높은 수준의 경제발전, 상호의존, 이데올로기적 수렴이라는 조건이 수렴되면 충성심의 이전이 일어나는데 보다 유리하다. 그러나 충성심의 이전은 외부화(externality)와 정치화(politicization)이라는 두 과정에 의해 통합이 위기와 교착상태 빠질 수도 있다.

브렉시트는 초국적 기구가 다루던 경제적 이슈 범위가 축소되고 개별국가로부터 양도 받았던 주권의 반납을 의미하는 역행 현상은 EU법에 간섭 받던 주권을 되찾아 왔다는 점에서 브렉시트를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유권자들의 49%EU를 떠나는 이유로 영국민의 주권을 들었다. 한편, 유권자의 33%는 영국이 이민과 국경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들었다.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윤율 저하로 인한 양극화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처럼 기능주의적 분석만으로는 브렉시트의 근본 원인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2. 현실주의, 자유주의적 정부간주의

 

현실주의자들은 국제체제를 둘러싼 권력배분으로 국제관계를 설명한다. , 브렉시트는 영국, 프랑스, 독일로 대표되는 유럽 주요국들 간 권력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특히 경제적 이익, 안보, EU 권한 확대라는 종속변수로서 브렉시트의 원인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은 위대한 고립(splendid isolation)’ 이라는 영국의 정체성 부분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를 갖는다.

한편, 자유주의적 정부간주의는 통합의 교착상태는 양보를 통해 새로운 균형을 성취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자유주의적 정부간주의 이론은 전통적 현실주의 이론인 정부간주의 이론에 국가의 선호가 국내정치적 차원에서 형성되는 과정을 추가했다. 모랍칙의 자유주의적 정부간주의는 국가의 이익으로 통합을 설명하는 정부간주의에 국내변수들을 고려하는 자유주의적 관점을 추가한다. 첫 번째, 내부 논의를 통해 국가의 이익과 선호가 형성된다. 두 번째, 정부는 국가의 선호를 바탕으로 타국정부와 협상을 한다. 세 번째, 제도적 선택 단계는 주권의 공동행사 혹은 주권의 위임 사이에서 정부들이 선택하는 과정이다. 즉 국가 내부적 논의와 행위자들의 경쟁을 통해 국가의 선호가 결정되고 정부는 국제협상에서 이미 형성된 선호를 반영시키고자 한다. 반영된 선호는 정부간 협상을 통해 제도로서 형성된다. 자유주의적 정부간주의는 브렉시트를 정부의 역할에 초점을 두고 통합 및 갈등현상을 설명하고자 한다. 즉 브렉시트 결정에는 정치적 행위자들의 자율적이며 강력한 영향력이 부각된다. 정부 중심의 현실주의 이론은 상위정치 영역으로 인식되는 안보이슈 영역에서의 분석에 유용하다. 브렉시트와 관련해서는 국민투표라는 방식을 통해 브렉시트가 결정되었듯이 국가 혹은 초국적 기구가 중요한 행위자라는 가정은 공유하나 국내 사회적 행위자들의 선호를 간과한다.

주류 통합 이론은 아니지만 유럽통합이 경계를 재정의하는 과정으로서 초국적 수준의 정체를 형성하는 통합의 과정인 동시에 국가 수준의 정체에서 경계가 와해되는 이중적 과정임을 강조하는 바르톨리니(Stefano Bartolini) 정체형성(polity formation)에 관한 분석틀도 브렉시트를 설명하는데 유용하다. 브렉시트는 현실주의, 자유주의 등 여러 가지 이론으로 분석이 중첩되기 때문에 어떤 한 가지 이론만으로는 그 적실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브렉시트는 유럽통합 혹은 분열현상에 대한 다양한 이론적 논의를 가능케 하는 사례인 동시에 유럽위원회와 회원국의 권한 배분을 둘러싼 논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무엇보다 브렉시트가 영국의 국내정치가 다른 EU 회원국들과 비교해서 매우 불안정한 상태가 아니었음에도 발생했기 때문에 탈퇴의 과정을 한 가지 이론으로 설명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EU에 대한 담론은 주로 경제적 합리성과 국가의 정체성이라는 두 축에서 형성된다. 경제적 합리성은 유럽공동체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루어온 주권국가 간 초국가적 통합의 이면에 항상 존재해왔다. 국가 정체성 문제는 국경통제와 같은 자주권 행사와 관련한 정책에서 나타난다. EU의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시나리오는 브렉시트와 같은 사태가 회원국들 중에서 재발할 가능성이다. 따라서 최근의 유로존 사태와 브렉시트 이후 거버넌스 체계의 형태와 작동원리, 그리고 이론적 적실성을 규명하는 연구가 절실히 요구된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