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논문 및 미발표 논문

EU 사회통합과 이민·망명정책

EU정책연구소 원장 Ph.D Lee JongSue 2021. 4. 29. 09:33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 이주한 알제리, 터키, 튀니지 등지에서 온 이민자들은 현대 유럽 국가들의 경제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전후 이들 국가의 이민자 공급은 유럽 노동시장의 수요를 충족시켰다. 그러나 서유럽의 전후 복구가 마무리되자 공급이 새로운 이민자를 흡수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의 능력을 초과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이민자들의 초과 유입은 결국 서유럽의 복지를 위협할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로 인해 1970년대 이후 서유럽에 과도하게 유입된 이주노동자들은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초청노동자들의 초청 기간 만료 후 본국으로의 귀국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가중되었다.

여기에 1970년대 발생한 2차례의 오일위기는 서유럽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이주노동자의 증가와 서유럽 전반에 불어 닥친 불황은 고용감소로 이어지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노동이민 제한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민자 가족들에 의한 초청 이민(chain migration)이 지속됨으로써 서유럽 국가로의 인구유입은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이민자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현지인과 이민자 간의 경제적 자원의 분배를 놓고 갈등이 유발되었다. 그 결과 복지의 정당한 분배와 사회통합의 측면에서 이민자 제한 정책이 불가피해졌다. 과도한 이민자들이 사회의 취약계층을 형성함으로 인해 그들의 복지비용을 두고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이민자들이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면서 비숙련 비전문직 국내 노동자들은 일자리 감소를 겪고 실질임금 하락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회원국들은 다양한 이민제한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역외국들로부터 유입된 이민자들의 문제는 국가적 전통과 특수성에 관련된 것으로 간주되어 회원국들의 권한으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었다. 이후 중동부 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이 민주화되면서 대규모 정치난민들이 서유럽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문제는 개별 국가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로 회원국들의 다양한 이민 제한정책과 함께 유럽연합은 사회적 차원의 통합정책을 실시하게 되었다. ‘사회적 차원(Social Dimension)’이란 유럽통합이 단순히 경제적 차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전체의 고용수준을 향상시키고,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등의 사회적 차원의 통합을 의미 있게 고려하는 것이다. , 통합된 유럽사회가 질적으로 상향평준화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함을 의미한다. 유럽통합에서 사회적 차원이 대두되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유럽기업들이 규모의 경제에 입각하여 자동화를 추진하고 새로운 가술을 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한편으로는 기존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동화된 공장, 최신설비를 갖춘 공장에 필요한 숙련된 기술자의 양성 없이는 구조적 실업이 장기화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였다.

그러나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정의를 양립시키는 것이 유럽통합이 지니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라고 믿는 프랑스와 독일과는 달리, 영국은 자국의 재정 악화를 필연적으로 가져올 사회적 차원의 통합정책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독일과 네덜란드는 사회정책에 관한 회원국 간의 의견 불일치로 인해 영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나 동시에 프랑스의 양보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영국을 제외한 나머지 11개 회원국만이 유럽연합의 사회정책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유럽공동체가 그동안 적극 피해 왔던 두 속도의 유럽(Two speeds Europe)’ 또는 선택적인 유럽(Non-privileged Europe)’의 방식으로도 유럽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바람직하지 못한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그 결과 마스트리히트조약에서는 일부 신설조항이 추가된 사회정책 관련 조항과는 별도로 사회정책에 관한 의정서’(Protocol on Social Policy)와 이 의정서에 부속된 사회정책협정’(Agreement on Social Policy)이라는 두 개의 틀을 두게 되었다. 사회정책을 채택하지 않은 영국은 이 의정서와 협정의 범주에서 이루어지는 이사회의 토의와 결정과정에서 배제되었다.

사회통합정책의 시행과 이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유럽연합 회원국간 또는 지역간 생활수준 및 생산성 차이를 고려해서 실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저개발 회원국의 생산성 수준에 적용될 수 없는 노동조건과 보수를 부과하는 모든 사회정책은 낙후된 회원국들에게는 오히려 경제회복에 장애요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행위원회의 활동은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선진경제를 향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도록 촉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유럽연합은 사회보장제도를 비롯한 사회정책의 균질화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특히, 유럽 경제통합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현재 유럽연합 각국이 다양한 형태로 유지하고 있는 사회보호제도를 균질하게 통합·조정하는 작업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근대 시민사회 성립 이후 기본권으로 정착한 자유이주권이 심각하게 제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이라는 모토를 통해 실업(unemployment), 빈곤(poverty), 질병(illness) 등을 추방하기 위한 초국적 차원의 사회통합정책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 사회통합의 이슈가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별 국가마다 경제사회발전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적 가치나 문화적 전통에서 기존 회원국과 차이가 있는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가입으로 사회통합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해졌다. 200여명의 희생자를 낸 2005년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폭발사건과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반인종 범죄는 유럽 각국에서 사회통합의 필요성을 부각시킨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 유럽연합은 1990년대 들어서 인종, 종교 및 성별 등을 이유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규정과 권고안을 내놓고 있다. 동시에 1990년대 이후 이질적 문화를 가진 회원국들이 다수 가입하면서 단일의 규정보다는 회원국 수준에서 자발적인 시정조치를 의도한 권고안도 많아지고 있다. 이처럼 유럽연합의 사회통합정책은 초국가적 차원과 회원국 차원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 차원에서 시행하는 사회통합정책은 회원국 차원에서 실시하는 사회통합정책에 비하면 제도적 조치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1990년대 초반까지 유럽통합의 목적은 완전한 단일시장의 완성이었다. 사회통합정책은 시장통합이 야기하는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해서 출발한 것이다. 결속정책이나 노동시장 규정이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초국적 차원에서 지역간, 사회계층간 불균형 해소를 위해 자체재원으로 정책을 진행하는 분야는 구조기금을 통한 결속정책과 일부의 교육정책에 불과하다. 유럽연합이 국가간 사회경제적 불균형을 완화하고 사회 내 계층간 통합을 위한 사회통합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회원국 총 GDP5% 정도에 이르는 예산이 필요하다. 유럽연합이 이러한 예산을 확보한 단계라면 연방주의 국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 결속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유럽연합 차원의 사회통합정책이란 일부 정책과 규정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회원 각국이 시행하는 정책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그 한계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유럽연합이 상당부분 권한을 흡수한 이민정책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민, 조세, 복지와 같은 사회정책은 회원국들마다 사회·경제적 환경이 다르므로, 초국가적 차원에서 일관된 공동정책으로 실행하기 힘든 분야이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까지 유럽연합은 시장통합에 주력하였고, 사회정책 특히 이민·망명정책은 각 회원국의 고유 권한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단일시장이 완성되고 노동의 자유이동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면서 많은 부작용이 야기되었다. 대표적인 후유증은 폴란드를 위시한 중동부 유럽 국가의 숙련노동자들이 영국, 프랑스, 독일 등으로 대거 이동하면서부터 나타났다. 급속한 노동이동으로 런던에는 불과 10여년 사이에 폴란드 노동자들이 집단 거주하는 타운이 형성되고 급속히 확장되었다. 이러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은 현지에서 동일직종 근로자들과의 취업경쟁을 야기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금은 노동시장 교란 등의 문제를 가져왔다.

이미 1990년대 초반 아일랜드와 포르투갈 건설노동자들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대거 유입되면서 현지 노조의 강력한 반발이 있었다. 노조의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해당국 정부와 유럽연합은 노동의 자유이동은 보장하되, 역외국으로부터 유입된 노동자들은 현지인과 동등한 노동규정과 사회보장을 받아야 된다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 결과 기업은 저임금과 사회보장비용의 경감이라는 요인에 기인한 비숙련 노동자의 이동 및 취업을 줄였다. 그러나 회원국에 동일직종 임금의 차이와 복지수준의 차이가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동의 자유이동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상술한 바와 같이 현재 유럽연합은 아프리카를 비롯한 인근 국가들로부터의 이민자 숫자가 수요를 초과하고 있다. 그럼에도 인근 아프리카 국가들과 아시아 일부국가로부터의 노동자 유입은 지속되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출생률 감소와 인구의 노령화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러한 유럽사회의 변화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 출산율 감소는 노동력 감소로 이어지고 인구의 노령화는 사회보장제도의 기반을 잠식한다. 그 결과 인구의 노령화에 따른 노동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민자 유입이 고려된다. 그러나 노동인구 보충을 위한 이민자 유입의 문제는 경제적 측면에 대한 고려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도 고려되어야 하는 민감한 사항이다.

출처: The New EU Pact on Migration and Asylum | Heinrich Böll Stiftung | Brussels office - European Union (boell.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