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논문 및 미발표 논문

유럽연합(EU)의 공동정책상충성에 관한 연구-분석틀

EU정책연구소 원장 Ph.D Lee JongSue 2021. 6. 15. 09:23

1. 선행연구

 

공동정책에 관한 연구는 1990년대 후반 미국과 서유럽 학계에서 활발히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연구는 통합이론과 다층적 거버넌스 이론의 비교 및 정책네트워크 모델을 원용한 유럽연합과 각 지역과의 연계 등에 초점을 두었다. 또한 유럽연합의 공동정책에 대한 효과분석은 주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채택한 결정에 대한 분석, 또는 회원국 산업정책에 미친 영향에 초점을 맞춘 것이 주류를 이룬다. 2000년대 이후는 점차 유럽연합의 정책결정과정에서 공적 권한을 확장하고 있는 사적 행위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연구는 카심(Kassim)과 메논(Menon, 1996)의 연구를 시작으로 모랍칙(Moravcsik, 2004)의 연구가 그 대표적이다.

또한 지역정책에 관한 연구는 다층적 거버넌스가 실제 구현되는 과정을 분석하려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구조기금 배분과 낙후지역 감소와의 상관관계 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국내학자인 김학노(2009)는 유럽연합 지역정책의 거버넌스 방식을 분석하였고, 정해조·오연주(2013)는 지역정책의 민주적 운영방식을 다루었다. 그리고 문남철(2010)은 유럽연합 확대에 따른 지역정책 및 지역격차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분석하였고, 정홍렬(2011)은 구조기금 개혁을 중심으로 지역정책 전반을 다루었다. 이외에도 이종서(2009), 김은경(2008), 문남철(2010), 차미숙(2001), 정성훈(2002), 강현수(2003) 등이 지역정책에 관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통상정책에 관한 연구는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초국적기업들의 역할에 관한 것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은 자유무역주의 강화라는 무역정책의 기본목표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유럽의 산업보호를 목적으로 보호주의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입안하여 보호무역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통상정책 입안과정에서 나타나는 유럽연합의 산업가들과 특히 초국적기업들의 특권화 된 지위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의 연구는 제도적 권력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무역정책위원회(Trade Policy Committee)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국내 유럽연합에 관한 연구는 특정 국가와 주제에 한정되어 있거나 개별정책 산출에 대한 미시적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유럽화과정은 물론 유럽연합의 지역정책, 통상정책, 경쟁정책 등의 비교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최근 유럽연합에 관한 연구는 유럽학회와 유럽정치연구회 소속의 일련의 학자들에 의해 유럽연합의 제도, 이론을 비롯한 개별 정책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유럽연합의 공동정책간의 상관관계 또는 비교 연구보다는 개별 공동정책 및 회원국 정책변화과정에 대한 연구는 많은 진척을 보이고 있다. 한현옥(2006)은 미국과 EU의 경쟁정책을 비교분석하였고, 최요섭(2012) 보조금 규칙과 경쟁정책과의 관계를 다루었다. 또 황준성(2003) 유럽연합의 경쟁정책의 특징과 시사점에 관한 연구로 경쟁정책을 심도 있게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일부를 제외하고 유럽연합의 정책간 비교연구라기보다는 제도 및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동정책 간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규명한 연구는 아직 부족한 실정이다. 다면 국내 유일하게 이상헌(1999: 55-74)은 유럽연합의 경쟁정책과 통상정책간의 관계를 분석하였다.

2. 분석틀

 

만델(Mandel, 1995)은 유럽통합의 발전을 자본의 축적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는 회원국 기업들간의 합병과 미국자본에 의한 유럽기업 인수와 같은 일련의 초창기 자본집중 현상을 유럽국가의 본질변화로 지적하였다. 즉 서유럽에서의 자본집중은 서유럽 차원의 부르주아지를 등장시켰으며, 이들 서유럽 부르주아지는 초국적 차원에서의 국가의 재개편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컥스(Cocks, 2000)20세기 후반 이후 유럽통합의 동인으로 자본축적을 위시한 국가적 시장간 상호의존과 상호침투 과정을 들고 있다. 국가적 시장은 일국 영토 내에서 자유무역과 공동의 통화가 사용되는 시장을 뜻하며, 국민적영토적 국가에 의한 정치적 통일과정은 일국내의 국가적 시장의 완성을 동반하는 것이다. 반면,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상호의존을 통한 자본축적 과정을 유럽통합의 동인이라고 주장한다.

해크(Haack, 1983, 377-381)는 유럽통합의 동인으로 자본의 내적 논리를 강조한다. 이 접근법은 유럽통합이 가능한 이유로 개별 유럽국가간 교역 또는 자본이동이 방해받았기 때문에 유럽기업간 연합에 의한 확대가 가능했다는 다소 역설적인 논리를 편다. 이러한 이유로 유럽의 기업들은 유럽국가에 의해 방해 받지 않는 거대한 보호시장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논리에 따르면 유럽통합은 자본가의 이익 요구를 수렴하기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블록(Block, 1980, 229)기업의 자신감혹은 기업의 확신이 국가 행위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이익추구를 방해하는 요소라는 주장을 편다. 비록 국가 관리자들이 본질적으로 그들의 권력, , 명성을 극대화 하는데 관심을 갖는 행위자일지라도 권력의 지속적 유지는 정치와 경제 질서 유지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회질서의 재생산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 행위자들은 대중의 일반적 이익을 대변하는 특정 정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취약점을 보유하고 있다. 결국 한정된 이익 추구자인 개인자본가들과는 달리 국가 관리자들은 국가의 경제행위를 최고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투자 및 축적 과정을 지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유럽통합에 대한 맑스주의적 설명들은 유럽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그들의 이익에 대한 내외적 위협요소들에 대처하기 위하여 서유럽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홀란드(Holland, 1980)는 그의 저서 Uncommon Market에서 유럽통합이 모든 이익집단이나 지역에게 혜택을 준 것은 아니지만, 통합과정을 대부분 자본가의 이익에만 치우쳤다고 주장한다. 홀란드는 하버마스(Habermas)합법화’(legitimation) 개념을 인용하면서 합법화와 합치노력’(consensus support)은 필연적으로 다원적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요소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중억압의 수단보다는 사회적 동의를 얻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은 중립적인 역할을 할 수 없으며, 대신에 시장은 자원배분을 조정하는 기제로서 체제를 합법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시장은 생산수단의 소유자와 임금노동자간 권력관계를 제도화함으로써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Holland, 1980: 8-15).

홀란드는 유럽연합의 제도들은 전보다 더 좋은 시장수행능력을 보장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합법화 과정이 한편으로는 유럽의 자본주의 발전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유럽연합 제도들에 스며있는 부정적인 면을 부정적 통합접근’(negative integration approach)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부정적 통합수단이란 상품, 서비스,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내부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다. 반면 긍정적 통합수단’(positive integration approach)이란 유럽연합의 차원에서 지역적 분열 혹은 실업과 같은 공통의 문제점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지역정책을 비롯한 공동정책들을 계획하는 것을 의미한다(Hix, 1999: 211-240). 따라서 홀란드는 거대한 다국적 자본이 부정적 통합수단으로부터 물질적 이익의 확대를 도모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정책수단이 다국적 자본으로 하여금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자유를 부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긍정적 통합수단은 다국적 자본의 자유에 제한을 가할 수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중소자본은 시장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유럽연합보다 회원국 정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Holland, 1980: 107).

이와 같이 유럽연합은 부정적 통합과 긍정적 통합에 각각 경쟁을 저해하는 시장장벽의 제거, 그리고 제도적 조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탈규제조치, 표준화 및 수량제한의 철폐 등 초국가에서 직접적인 규제조치를 통해 이루어진다. 반면에 후자는 세율, 노동시장규정, 복지, 낙후지역 개발 등 자유경쟁을 억제하는 사회안전망의 수준을 조정하는 것으로 주로 초국가와 정부간 협상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부정적 통합과 긍정적 통합이라는 엄밀한 이분법적 경계는 모호하며, 결국 긍정적 통합은 부정적 통합으로 인한 불평을 잠재우는 보조적 역할에 그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지역정책의 수단인 지역기금만 갖고서는 지역간 불균형 격차를 해결할 수 없다. 이는 사실상 통상정책으로 인한 초국기업의 이익 추구행위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에 불과하다.

이상의 홀란드의 주장을 종합해보면 유럽연합은 공동개입에 대한 관심보다는 시장기능의 활성화 경쟁의 남용을 막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다. 실제로 집행위원회의 엘리트 위주의 정책제안, 프랑스를 위시한 일부 회원국 정부들의 긍정적 통합수단을 확대시키려는 노력의 실패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대체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유럽의 정치구조는 자본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노동자의 이익은 정책결정과정에서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 비록 집행위원회의 정책결정자들이 그들 스스로 자본의 이익을 반영하고 있는 존재로 여기지는 않을지라도, 그들은 자본주의 생산형태와 자본가계급의 유지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홀란드에 의하면 현재 주요 권력의 축이 국가기구들과 유럽연합의 제도 사이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유럽연합의 정책결정과정이 정치적 합법성과 유럽인들의 동의를 얻는 민주적 신뢰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Føllesdal, 2004: 112-134). 하나의 좋은 예로 낙후된 지역의 부활과 결속을 위해 마련된 지역정책도 파트너십에 근거한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즉 유럽연합내 자원분배와 같은 문제에 있어서도 노동자계층은 극히 제한된 역할만 하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증거이다. 결국 노동자 계층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은 현 유럽연합의 권력구조 내에서 거의 없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히 연구되지 않은 영역으로 유럽연합 공동정책간 주요 통상정책과 경쟁정책, 그리고 다층적 한계와 지역정책 등을 분석하는데 초점을 두고자 한다.